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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집 속 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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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집 속 밑줄

고서점에서 만난 낡은 시조집이 남긴 붉은 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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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서점 골목은 늘 조용했다.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책장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손끝에 걸린 낡은 표지.

시조집이었다.

표지는 바래고 모서리는 헤어져 있었다.

펼쳐 보니 첫 장에 흘려 쓴 글씨.

이름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시조 한 수씩.

산은 옛적에 그대로요.

강물도 예와 다름없다.

가락은 익숙한데 단어가 조금 달랐다.

어떤 구절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붉은 잉크.

희미하지만 분명했다.

나는 그 구절들만 모아 보았다.

임을 그리는 밤.

돌아가지 못한 길.

빈 자리의 달빛.

사랑. 기다림. 떠남.

마지막 장 귀퉁이에 짧은 한 줄.

시가 나를 기억하리라.

날짜는 지워져 읽기 어려웠다.

방으로 돌아와 구절을 다시 배열해 보았다.

임. 길. 달. 기억.

마치 암호 같았다.

다음 날 주인 할아버지께 여쭈었다.

이 책은 누가 두고 간 것입니까.

할아버지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씀하셨다.

십 년도 더 된 일이다. 젊은 여자가 놓고 갔지.

비가 오는 날이었소.

나는 시조집을 품에 안고 골목을 나섰다.

빗줄기가 어깨를 적셨다.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알고 싶어진다.

붉은 밑줄이 가리키는 끝을 향해.

다음 주말에도 이 골목을 다시 찾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