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닝 작품관
제례악의 밤
수필
문학
역사

제례악의 밤

종묘 제례악이 전해주던 깊은 역사의 숨결

144

본문

그 밤은 유난히 고요했다. 종묘 정전 앞마당에 앉자 차가운 돌바닥의 감촉이 손바닥에 그대로 전해졌다. 어둠 속에서 악사들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먼저 들렸고, 이내 장엄한 선율이 넓은 마당을 서서히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편종의 맑고 단단한 울림이 밤공기를 하나씩 깨웠다. 축이 낮게 땅을 울리면 어가 가볍게 응답하듯 따라붙었다. 피리와 젓대의 긴 숨결이 서로를 감싸 안으며 천천히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앞에는 붉은 관복을 입은 이들의 행렬이 소리만으로 선명하게 그려졌다. 조상께 올리는 정성이 음률 속에 고스란히 담겨 피어올랐다.

이 선율 속에 스며 있는 것은 수백 년의 시간이었다. 왕조의 숨결과 잊힌 발자국들이 음표 사이사이에 살아 움직였다. 역사는 더 이상 책장 위의 납작한 글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 밤 내 귓전을 울리는 뜨거운 숨결이었다. 과거의 무게가 현재의 내 가슴에 가만히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달이 처마 끝을 천천히 넘어갔다. 제례악은 절정에 이르렀다가 차츰 잦아들었다. 마지막 여운이 바람결에 흩어지고 나서도 귀 속에는 그 울림이 오래 남았다. 돌계단을 하나씩 내려오며 문득 깨달았다. 역사를 단지 외우는 일과 온몸으로 듣는 일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그 밤 공기는 차가웠지만 내 안쪽 어딘가에는 작은 불씨가 하나 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