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수업이 끝나면 나는 늘 도서실 창가에 앉는다.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멀어질 때쯤 귓가에 남는 건 예전에 듣고 흠뻑 빠져버렸던 판소리 한 대목이다.
진로 시간을 앞두고 공책이 하얗게 비어 있다. 남들은 번듯한 직업을 쓰는데 나는 소리꾼이라는 글자만 맴돈다. 내성적이라 말수도 적은 내가 판을 벌이고 목을 터뜨린다니 스스로도 가끔 우습다.
그래도 새벽마다 이불 속에서 작은 소리로 따라 해 본다. 꺼질 듯 이어지는 그 가락이 내 가슴을 먼저 울린다. 언젠가는 이 조용한 꿈이 내 이름이 되길 바란다. 지금은 그저 숨처럼 간직하며 천천히 길을 익혀 갈 뿐이다.